일상의 단상

딸은 엄마를 닮는다

씨즈더데이 2025. 5. 22.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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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나는 엄마를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엄마는 아빠에게 잔소리를 많이 한다.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주들이 있어도 아빠에게 하는 잔소리는 멈춤이 없다.
 
어린시절부터도 그랬지만, 성인이 되어 남편과 친정집에서 잠을 잘 때도 대체로 엄마의 불평 불만 섞인 화가 잔뜩 묻어난 소리에 잠을 깨곤 했다. 새벽녘 주로 아빠를 타박하는 소리였다. 

한번은 이른 새벽 남편이 그 소리에 잠을 깨어 한숨을 쉬며, '어머니도 그만하시지' 하는 소리를 듣고 조금 부끄러웠던 경험이 있다. 
 
집안일이고 바깥일이고 간에 뭐든지 엄마가 정해놓은 기준에 맞춰서 아빠가 알아서 해주길 기대하고, 그 기대에 못미치면 잔소리를 하고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비난을 하고, 타박을 하셨다.
 
'이렇게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어', '이게 아니고 저건것 같아' 라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좋은 말로 차분히 말을하면 좋을 것을 그냥 말안해도 알아서 해주시길 기대한 것이다. 기대가 크니 서운함이 큰 것이다.

그래도 아빠는 그것들을 다 받아주시니까 저렇게 티격태격해도 지금까지 잘 살고 계신것 같다는 생각을 내가 나이가 들어보니, 그리고 그렇지 못한 남편이랑 살다보니 깨닫게 되었다. 
 
엄마가 인정머리없고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남편에게 살갑거나 따뜻하거나 다정한 말이나 표현을 거의 안하셨던 것 같다. 아빠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연세가 들수록 아빠가 표현을 더 많이 하는 편이긴 하다.
 
조금전에도 엄마는 화가 잔뜩 묻어난 말투로 내게 전화를 하셨다. 아빠가 양쪽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하고 병원에 입원해 계신지가 한달이 다 되어 간다. 한창 농번기에 병원에 그렇게 누워계시니, 아빠 몫의 일이 고스란히 엄마의 일이 되었다. 

모내기도 해야하고, 마늘도 뽑아야하고 지금 한참 할일이 많은데 아빠가 병원에 누워계시니 엄마는 많이 답답하셨을 것이다. 물론 아빠의 고통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본인 서러움이 물밀듯 밀려오는 것은 어쩔수 없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이번 주말이면 엄마생신을 기념해서 자식들이 다 모이기로 했다. 그러니 그때 마늘을 함께 뽑자고 했다. 그렇지만 엄마는 서투른 사람이 일을하면 일이 더 엉망이되고 추후에 자신이 할일이 더 많아 진다면서 고집을 부리고 평일에 막내아들만 불러서 기어코 마늘을 다 수확을 하셔버렸다.

그 뒷날까지 마늘 작업을 하셨다고 하니, 어깨랑 허리랑 성치 않으신 분이 얼마나 고단했을 거냐. 힘드셨을테지. 누가 억지로 시킨일이 아니고 해야하니까 당신이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하신거면서.
 
그런데 아빠는 병원에 계시면서 엄마가 마늘 뽑고 모내기하느라 힘든 것을 아시면서 고생했다는 전화 한통을 안하셨나보다. 엄마가 먼저 전화를 걸어 몸은 좀 어떻냐고 물어보셨는데, 아직 다리에 힘이 안들어간다고 하셨단다.

엄마는 '이제 차근차근 좋아지고 있네'  '이제 다음주라도 퇴원을 해볼라네' 이런 말을 듣고 싶은데, 병원에 입원한지 한달이 다 되어가는 사람이 아직도 못걷겠다고 하니 많이 속상하고 본인의 고단함이 서러움이 되셨나보다. 내게 전화해서 우시면서 하소연을 하신다.
 
엄마랑 전화통화를 끊고 아차싶은 것이 있었다. 나도 남편으로 인해 속상한 것이 있으면 딸에게 전화해서 하소연을 했었는데, 이제 안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엄마의 마음이 이해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객관적인 제 3자의 입장에서 '왜 굳이 그렇게까지 하면서... 본인이 본인 고생을 사서하면서 왜 아빠한테 그러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딸도 나를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니 다시는 그런 하소연을 안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퍼뜩 그런 생각이 드니, 엄마의 짜증섞인 말소리가 너무나 듣기 싫어졌다. 그냥 엄마의 모습이 거울이 비친 내모습 같아서 싫었다.

그렇게 나는 엄마에게 어떠한 위로를 해줄수가 없었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정말 못된 생각이지만 부셔져가고 있는 우리 가정에 부정이라도 탈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엄마가 아빠에게 좀더 다정하고 따뜻한 언어를 사용했더라면 나도 지금 남편에게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지금 현재 우리 가정을 사막화시킨것은 어쩌면 남편보다는 나의 역할이 컸을지도 모르겠다는 자책감이 밀려온다.
 
시간을 다시 되돌릴수 없겠지만, 우리 부부의 연이 아직 끝나지않았다면 좀 더 다정한 말을 해주리라 다짐해본다.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날은 다정하고 따뜻했으면 좋겠으니까.

부부의 연이 다했다면,
과감하게 나의 삶의 방향키를 돌려야 할때가 지금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혼자서도 잘 살아가는 법! 그것이 내게 남은 숙제이지 않을까?
 
양귀자 작가님의 '모순'이라는 장편소설을 소개하는 글 중에 마음에 드는 문구가 있어서 가져와 봤다.
 
인생은 탐구하는 것이다. 
작가는 소설 속 주인공을 통해 독자들에게 말하낟. 자신의 인생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살아가라고,
되어가는대로 놓아두지 말고 적절한 순간이 오면 과감하게 삶의 방향키를 돌릴 준비를 하면서 살라고,
인생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고라도 탐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무엇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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